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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ultory remark

[연극_혜경궁 홍씨] 아들만 바라본 것은 죄가 아니지요...

혜경궁 홍씨

 

2013. 12. 28. Sat. 오후 3시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캐스팅: 김소희 (혜경궁), 정태준 (정조), 최우성 (사도세자),...

 

한중록. 한국에서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밟았다면 한번쯤 스쳐 들었을 법한 제목.

나에게 첫 경험은 초등학교 도서목록에서 였다. 여성이 지은 기록서. 그 당시 생각에는 조선시대라는 시대에 여류작가?가 있다는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더군다나 궁중에서 일어난 사건의 일기라는 유혹에 두껍지만 선뜻 빨간책을 꺼내들은 기억이 있다.

그 책을 읽어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묻어두었지만, 그 당시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굶어죽였다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이었다.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길래 하나밖에 없는 친 아들을 한여름 뒤주에 넣어 며칠이나 방치하고 결국 굶겨죽었는지... 아직도 이해하기엔 쉬운 문제는 아니다.

아무리 정치로선이 다르고 암투와 함정이 들끓는 구중궁궐일지라도, 인간이 사는 곳이 아니었겠는가! 아버지는 늦둥이 아들이 얼마나 귀엽지 마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아들을 죽이고, 그 아들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세손의 위치를 자신의 먼저 죽은 장손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시키는 작업까지... 한 아버지로써 너무나 큰 사건을 진두지위하고 은폐(?)한 것이 무서운 따름이다.

그런 무시무시한 시아버지 밑에서 남편하나 믿고 궁궐로 시집온 홍씨는 남편의 바람잘날 없는 미치광이 행위와 온전치 못한 상태를 어찌 견디어 냈을지... 한 여자의 입장에서는 너무 불쌍한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다른 한 시각으로는 오히려 남편 사도세자를 죽이려고 가담했다는 오명까지 가지고 있는 혜경궁의 후세 평가를 보면서, 만약 나라면 그 시대를 어떤 정신으로 살아야 했을지 안타까움이 앞섰다. 왕족이라는 신분에 걸맞게 살기 위해 한 유생의 딸이 었던 홍씨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숨직이고 그 긴 시간을 버티어야 했을까.

비록 자신이 낳은 아들이 있지만, 그 남편의 오명으로 떳떳하게 자식으로써 왕위에 오른 것도 아니고, 권력틈새에서 오직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숨쉬는 것조차 이목을 끌지 않으려고 살지 않았을까?  그런 서러움이 정조 자신이 왕위에 즉위하는 그 당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외침에 녹아 있는 듯 했다.

이 혜경궁 홍씨라는 연극은 이렇게 복잡하고 실날같은 희망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가냘픈 여성으로 견디어 내어야 했던 나날을 이윤택 연출 손에서 다시 재창조되어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이 극의 처음 시작은 정조가 혜경궁의 회갑연을 여는 장면부터 시작하는데,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 치고는 상상을 조금 넘는 정치적 칼이 겨눠진 전쟁터 같았다.

어머니는 외가의 복귀를 염원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허할 수 없는 절대 권력자 아들의 심리적 갈등. 혜경궁 홍씨는 아들이 오르면 자신의 가문이 다시 세워지고 탄탄대로를 약속 받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정조는 외척의 힘을 줄이고자 그들의 자리를 더 옥죄어 갔다. 이씨 왕조를 성립하기위한 기초 기반을 닦으려 했음이라...

모 이렇게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모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효라고 부르는 모습은 어그러진 하나의 빈 껍질 같았다.

이 장면을 지나 혜경궁 홍씨는 다홍치마라는 매개체를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 그 복잡하고 생각하기 싫은 과거를 여행하고 다시 돌아와 글을 담담히 작성하는 것으로 극은 크게 마무리 된다. 홍씨는 아내로써의 한 남자의 사랑을 갈구 했고, 그 남자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싶어했으며, 그 남자의 힘이 되고자 했지만, 외적인 영향아래 그녀는 그 남자를 지키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그 남자를 죽음쪽으로 몰아가는 편이 되어버린다. (그녀의 고의가 아니었을 지라도...)

사도세자가 과연 혜경궁 홍씨를 사랑했는지 그냥 동반자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혜경궁 홍씨는 아들바라기 보다는 남편바라기에 훨씬 가까워 보였다. 그렇게 궁궐에 입궐한 10세 부터 아들이 장성한 나날까지 근 60년을 표현하는 김소희 배우는 작은 체구에 비해 뿜어내는 에너지의 양은 가히 극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을 합친것 보다 더 장대했다.

이미 27일자 조선일보에서 김소희 배우에 대해, 몸 잘 쓰는 배우, 작은 체구지만 극의 몰입도가 좋으며 여러 발성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한 배우라는 평가를 이미 본 이후인지라, 그 하나하나 비교해서 보는데 매우 귀한 시간이었다.

울림통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배우란 수식어가 잘 어울렸다.

그녀의 한에 맺힌 절규와 혼돈의 조선 궁중사건을 단 2시간의 몰입으로 완결지을 수 있는 것은 연출가의 마초적인 성향, 약간 폭력성이 가미된 연출이라 가능했다고 본다.

중간중간 4명을 구성된 국악단원들의 배경음악이 있었기 때문에 그 완성도가 더 만족도에 근접했다는 생각도 든다.

비록 중간에 옆동의 공사때문에 울린 화재경보때문에 글 7분이상이 짜증으로 얼룩졌지만,

그래도 그 짜증을 조금이라도 감하게 된것은 배우들 혼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